‘야훼의 도시’로서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시온산

성지순례 29 시온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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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타임스
기사입력 2020-06-29 [14:24]

최후의 만찬 장소·성모 마리아 소천한 곳에 기념 교회 세워져…

성전 서편 ‘통곡의 벽’, 옛 성전의 마지막 유물로 유대인의 성지

시온산은 해발 765m로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산등성이’ 또는 ‘요새’ 곧 성벽으로 둘러싸인 언덕을 뜻하는 것으로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수님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안에 있었으나, 16세기 중협 오스만 투르크 술레이만 황제가 성벽을 구축할 때 밖으로 제외했다. 

1948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군과 아랍 군이 시온 성문을 두고 격전을 벌어 현재 시온 성문과 성벽에는 그 당시의 수많은 탄흔이 남아 있다. 

시온산은 교회의 발상지로서 최후의 만찬과 성령강림이 이루어진 곳이다. 

제자들과 마리아와 함께 이곳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대인과 회교도들도 경배하는 다윗왕의 무덤 있어 이 산을 성스럽게 여기고 있다.

시온산은 원래 예루살렘의 남쪽 언덕(다윗 도성)을 가르치는 이름 이었다.

다윗이 계약의 궤를 이곳에 옮겨 제단을 쌓은 이래 이 언덕을 야훼의 거룩한 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솔로몬이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웠기 때문에 시온이라는 명칭은 모리야산을 포함하는 이름이 되었다.

상징적으로는 거룩한 산, 예루살렘 도시 전체를 의미하면서 야훼의 도시로서 예루살렘을 강조할 때 사용되어 왔다.

 

△최후의 만찬 기념 교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던 장소라고 여겨진 곳이다. 비잔틴시대부터 성역화되였던 곳으로 비잔틴시대 기념교회는 614년 페루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12세기 십자군에 의해 2개의 교회가 연결된 형태로 다시 재건되었으나, 회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1176년 아래 교회에서 다윗의 무덤이 자리했던 곳으로도 확인되었다. 1333년 나폴리왕 로베르또와 왕비 산치아가 이 곳을 매입하여 프란치스코회에 봉헌 하였고, 그 후 이곳에 수도원과 고딕 양식의 2층 성전을 지어 “최후만찬 기념 성전”이라 불렀다.

1517년 터키계 회교도들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이 쫓겨난 이후 근 4백여년 동안 회교사원으로 사용되다가 1948년 이스라엘 정부에 귀속되어 현재 지상층에는 다윗 무덤이 자리한 곳이라 하여 유대인들이 시나고그와 탈무드 학교를 만들었다. 위층에 있는 성령강림 기념교회는 폐쇄시켜 버렸다.

최후의 만찬 기념 교회만 개방하였다.  

건물 안의 종교 행사는 법적으로 금하나 목요일과 성령강림 대축일에는 그리스도인에게 말씀전파만 허용하고 있다.  

1936년 기념교회 터 바로 옆에 부지를 매입하여 프란치스꼬 수도회에서 기념교회와 수도원 건물을 지었다. 

 

△마리아 기념교회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내고 소천했다는 장소로 알려진 이곳은 시온산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최후 만찬 기념성당과 인접에 있다.  

1100년 십자군 시대에 교회가 세워졌고,  1219년 회교도가 이 지역을 점령하여 교회를 파괴하였다.  

1898년 터키가 부지를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넘겼다. 

그 후 독일 베제딕도 수도회가 빌헬 황제에게 부지를 기부 받아 1906년부터1910년에 걸처 기념 교회를 완공하였다.  

교회 안에는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모자이크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고, 바닥에는 삼위일체의 상징과 사도들의 모지이크가 있다.  

 

△통곡의 벽 

성전의 서편에 ‘통곡의 벽’이 있다.  

유대인들이 성전의 파괴를 마음 아파하면서 큰 소리로 기도하러 이곳에 찾아온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야훼의 거처요, 야훼의 현존을 뜻했다. 

그래서 이곳은 유대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으로 옛 성전의 마지막 유물로 추앙 받은 곳이다.

솔로몬왕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은 BC587년에 바빌론에 의해 파괴되었다. 바벨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BC515년 성전을 재건하였는데 이것이 제2성전이다. 

헤롯이 성전을 대폭 증축 하였는데 유대 전쟁 시(66-70년) 이 성전도 파괴 되었다. 이때 남은 부분이 서쪽의 성벽이다.

로마 시대에는 유대인들을 들러오지 못하게 했으나 비잔틴 시대에는 일 년에 단 한번 성전 파괴 기념일에 방문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967년 6일 전쟁 승리 이후 이 근처 아랍인들을 철거시키고 이곳을 유대인들의 집회와 기도 장소로 만들었던 것이다.

 

시온산에서 / 신춘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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