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38 : 비아돌로로사11,12지점] ‘부활의 소망’ 주신 주님 향해 사랑의 고백이 저절로

조롱·멸시 마다하지 않으시고 세상 구원하기 위해 친히 못 박히신 11지점
‘다 이루었다’며 십자가서 운명하신 12지점 도착하자 주님 사랑에 눈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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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타임스
기사입력 2021-02-01 [16:54]

▲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예장백석총회 광주노회 목회자들과 성태화 목사.     ©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알몸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앞을 가려주신 하나님. 

하나님 앞에 서 있기를 두려워하여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죄책에 사는 인생을, 죄악 된 인생들 앞에서 옷을 벗기심을 당하면서 그 조롱과 멸시함을 마다아니하시고 벗겨지신 성의로 우리의 허물을 가려주시고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으니 그 은총 감사하며 구령의 열정으로 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옮겨진 발걸음은 제11지점이다.

주께서 십자가 형틀에 오르신 현장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현장에 왜 이제와 도착했나. 죄책감에 몸 둘바를 몰랐다. 나도 베드로처럼 무서워서 도망쳤을까.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죄인이기에...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신 주님. 경배하며 찬송하기를 간절한 마음이다. 

 

▲ 제11지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

 

두 손은 이제 못에 박혀 있기에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 11지점.

두 발도 못에 박혀 있기에 아무 곳에도 갈 수 없게 된 곳. 

온 몸은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있기에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하늘에 있는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게 되어, 다만 여기서 죽을 때만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 현장.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주께서 가장 극형인 저주의 십자가에 놓이셨는데, 어떻게 이해 할 수가 있을까.

주께서 계속 한 지점, 한 처소에서 엄청난 행동만을 보여 주시기에 그저 놀랍고,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진다. 

주님은 그러시며 우리게 “나는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여기에 이렇게 못 박혀 있는 것 이란다” 고 말씀하시고 싶으실 것이다.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으신 능하신 분이시라면서 그렇게 하시느니 차라리 내가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질문 하고 푼 현장이다. 

그런데 도대체 주님은 우리더러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이런 행동을 하셨을까.

눈만 뜨면 어디에나 보이느니 십자가. 차라리 제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속이 편하겠는가.

십자가에 두 손과 두 발이 못 박혀 높이 들려 계신 주님. 당신의 그 깊은 뜻을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두 손을 모은 지점. 

그래서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과,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밝히 알아 우리자신을 위해서 꼭 해야 할 일만을 하고 살며, 꼭 가야 할 곳만을 가며, 꼭 가져야 할 것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한 맘으로 묵상하며 발걸음을 제12지점으로 옮겼다.

 

▲ 제12지점 운명하신 곳.     ©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당한 곳이다.

아래로나 위로나 아무 곳에서도 아무런 위로도 받으실 수 없는 처지에 놓여 극심한 죽음의 고통을 겪으신 주님.

그 고통이 너무나도 엄청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요”라고 부르짖으셨다.  

주님은 시작도 마침도 없으신 영원한 분이, 죽음의 고통이 웬 말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서 어떻게 죽으실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당신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이 아니신지요. 그렇지 않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 대로 당신의 크신 힘을 보여 주지 않고 그렇게도 무참히 죽으실 수가 있었나요. 우리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우리도 주님을 조롱하던 많은 사람들처럼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이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라고... 

 

▲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이시돌 은총의 동산에 십자가의 길을 재현한 조각작품.     ©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양의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꼴을 찾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는 음성이 쉼 없이 들러 온다. 

‘주님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가장 최고의 형벌을 받고 거기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신께서 목숨을 바치신 것은 당신의 양떼 중에 하나인 제가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하신 것임을 이제야 알겠습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십자가의 주님을 가까이서 보고픈 12지점.  

주님은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태초에 벌써 예고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어 4천년이란 오랜 세월을 기다리게 하시고, 2천 년 전에 이 세상에 내려오시어 주님의 목숨을 바치셨고, 이제 우리를 당신의 양떼 중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고자 그렇게 하셨음을 이제야 알았노라고 고백하는 현장인 것이다. 

감사 합니다 주님. 주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저의 죄를 대신하여 그 많은 고통을 겪으시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는데, 우리는 이제껏 주께서 우리와 그렇도록 가까이 계시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아 온 무지한 인생 아닌가.   

 

▲ 갈보리 십자가가 선 곳이라고 추정하는 성묘교회 내부.     ©

 

‘죄 많고 보잘것없는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주님. 이제부터 우리가 주를 위하여 어찌해야 할 지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를 ‘목숨을 바친 그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는데, 저는 그런 당신의 눈을 외면한 채 다른 곳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으니, 저는 당신께 너무나도 많은 빚을 진 것입니다. 그 빚을 어떻게 갚으면 되겠습니까? 오, 주님! 우리도 이제는 주의 그 사랑을 우리의 온 몸으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께서 온 몸을 바쳐 살리기를 원하시는 이웃을 사랑하여 제 목숨을 바쳐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처럼 그렇게 목숨을 바쳐 사랑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라며 간절한 묵상으로 십자가를 되새기는 현장.

“목마르다”고 절규하신 주님.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고 목이 마르셨을까. “다 이루었다” 마지막 남기시고 가셨으니...

고난을 넘어 부활의 영광을 소망케하신 주님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오르신 주님을 ‘사랑합니다’는 고백을 계속하고픈 현장이었다.

비아돌로로사11,12지점서 / 신춘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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