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39 : 비아돌로로사 제13,14지점] 태초부터 준비하신 ‘구원의 계획’을 이루신 예수님

우리의 새로운 참 생명 위해 십자가 달려 죽으신 주님
속죄 희생양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 ‘죄의 벽’ 허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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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타임스
기사입력 2021-02-22 [16:34]

▲ 주님의 빈 무덤에 엎드린 필자.     ©

 

원조 아담의 범죄로 갈라진 하늘과 땅 그 중간에서 못 박혀 죽으시므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신 주님은 스스로 하나님께 드려진 속죄 희생양이 되시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놓여진 휘장을 찢어놓으셨다. 

그러므로 너무나도 멀고 아득하여 도저히 올라갈 수 없었던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로 누구라도 당신을 통해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올라갈 수 있게 하여 주셨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은 이제 가장 비하의 자리의 죽음의 자리로 내려 오셨다.

가장 낮은데로 임하신 주님이다.

 

▲ 제13지점. 예수님 시체 놓였던 곳.     ©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고요와 적막감만이 감돌뿐이다. 

온 세상은 캄캄하여지고, 주님을 괴롭히던 많은 사람들도 다 집으로 돌아가고,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소리없는 흐느낌만이 그 적막을 깰 뿐이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옮겨 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원하는 대로 하지마시고 아버지의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라고 피땀을 흘리며 절규하시던 주님, 십자가 위에서 아무의 위로도 받지 못한 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으시던 주님.

이제는 심한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그 혹독한 고통이 다 사라지고 잔잔한 고요와 평화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당신께서는 이제 할 일을 다 마치시고 고요와 평화 속에 머물러 계시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는 어머니 마리아의 엄청난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바치고 평생 동정으로 살겠다고 약속했던 마리아님.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주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시고 그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일. 그 일은 잘못하면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저는 주의 계집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고 고백하며 그 엄청난 일을 받아들었다.  

그 때부터 마리아의 고통의 세월은 시작되었다. 

태어나시기로 예언된 베틀레헴에서 아기를 낳기 위하여 만삭의 몸으로 머나먼 길을 여행해야 했고, 주님을 죽이려는 헤롯의 칼을 피하기 위하여 타국으로 피난을 가야 했고, 고향에 돌아와서도 주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사흘 낮 밤을 애를 태우셔야 했다. 열두 살 때에 성전에서 내노라하는 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느라 여념이 없을 때, 사흘 만에야 주님을 찾아 내, “얘야, 우리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고 하자,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하고 매정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하셨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시고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시며 노숙자 생활을 하시는 주님을 찾아 물어물어 오신 어머니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말씀일지 모르지만 주님을 낳아 주신 어머니에게는 너무나도 야속하기만 한 말씀이 아니었겠는가.

그토록 큰사랑을 안고 계신 주께서 유독 어머니에게는 왜 그렇게도 고통만을 안겨 드리셨을까. 불효,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

왜 좀 더 편하고 부드러운 방법을 택하시지 않고, 그토록 애를 태우시고 고통을 당하게 하셨는지.

이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무참히 죽어 시체가 되어 자신의 품에 있는 주님을 대하는 마리아. 아! 정말 주님의 사랑을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매정하게 박절하게 대하시는 주님을 이해하기가 너무나도 힘든 현장이다.

힘든 발걸음이 주님이 묻히신 곳으로 간다.

 

▲ 제14지점 예수님이 묻히신 곳.     ©

 

제14지점. 이제 주님 모습은 아무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세마포에 쌓여 캄캄한 땅 속에 묻힌 주님.

그 누가 하늘과 땅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라고 여길 수가 있겠는가.

몸은 이제 조금만 지나면 썩어 버릴 흙덩이에 지나지 않는 시체가 되어 더 이상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시체는 썩으면 심한 악취를 풍기기에 그 어떤 더러운 쓰레기보다도 더 사람을 역겹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을 파고 그 안에 묻어 둔다. 그리고는 그 위를 밟고 다닌다. 

땅은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받아들여 새롭게 만들어 새 생명을 키워 내는 곳이다. 시체는 아무도 모르게 땅 속에서 썩어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은 전혀 새로운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할 것이다. 

태초부터 준비하신 일. 그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백성들에게 고대하게 하셨던 구원의 일을 이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똑같은 고민을 안고, 우리가 걸어가지 않으면 안될 길을 따라 먼저 걸어가시었기에 이제 우리는 감히 당신을 따라 나서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십자가의 길로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모든 사람들처럼 무덤에 묻혀서 썩는 것으로 일을 끝내셨다면, 우리는 절대로 주님을 따라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의 죽음은 바로 새로운 참 생명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기에 새로운 삶의 대한 희망으로 따라 나서고자 하는 것이다. 

그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우리는 굳게 믿는다.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땅 속에 들어가 다 썩어 싹을 틔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무덤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이제 그 십자가를 우리게 넘겨주시고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묵상하는 제14지점.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따라 십자가 위에서 죽어 무덤에 묻힌 후, 주님처럼 부활(거듭남)하게 되면 저의 살과 피(희생, 봉사 섬김)를 만나는 모든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 모두를 살려내어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함께 갈 수 있게 시용되는 사역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주님의 빈 무덤에 엎드렸다.

비아돌로로사에서 / 신춘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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