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성경기록과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발굴결과 일치에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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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타임스
기사입력 2018-05-25 [17:54]

 내벽 무너져 외벽 계단역할 장비 없이 점령 하나님의 오묘한 손길

오래 전부터 기름진 토질과 오렌지, 바나나, 대추로 유명한 여리고

 

 

▲ 무너진 여리고성     © 기독타임스


요단강을 건너 시온 성을 향하는 발걸음은 한층 설랬다.

 

주님의 발자취가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와 함께 우리 일행은 삭개오가 주님을 만난 여리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을 향하여 진군하다 하나님의 임재의 특별은총과 함께 체험한 여리고 마을에 들어섰다.

 

여리고는 450Km되는 요르단 계곡 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계곡은 헬몬산으로 부터 남쪽의 아카바만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계곡이다. 케냐, 탄자니야를 거쳐 모잠비크까지 이어진다.

 

계곡의 가장 낮은 바닥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해저 396m인 사해 부근이다. 40Km 거리에 있는 예루살렘(해발760m)으로부터 약 1200m를 내려와 덥고 무성한 요르단 계곡에 이른다.

 

▲ 여리고 장터 오거리에서 여리고성 쪽으로 200m 정도 가면 삭개오 뽕나무로 불리는 큰 돌무화과나무가 서 있다.     © 기독타임스



여리고는 요르단 계곡 주변의 황량한 사막 정 가운데 펼쳐진 녹색 카페트와 같다. 오래 전부터 기름진 토질과 오렌지, 바나나, 대추로 유명한 곳 여리고다.

 

비옥한 여리고는 주전 7000~10000년 전부터 형성된 문명의 중심지였다.

 

▲ 여리고는 요르단 계곡 주변의 황량한 사막 정 가운데 펼쳐진 녹색 카페트와 같다     © 기독타임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에 있는 성중에 최초로 공격한 성이 여리고 성이다.

 

여호수아 6장 15-17절에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성에 일행이 들어서자 그날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한 가슴 벅찬 감동이 왔다. 무너진 여리고성은 아마 설교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성지 장소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여리고성을 묘사할 때 난공불락의 요새의 이미지로 설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렇게 설교하시던 목회자들이 여리고성을 답사할 때 가장 난망한 것이 정말 이곳이 여리고성이 맞느냐고 묻는 것이며, 아마 아직 발굴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위안을 삼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눈에 보이는 여리고성의 생각을 접어두고, 발굴 도면으로 생각을 옮겨 상상력을 동원하여 옛 모습을 복원하여 본다면 실망감은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여리고의 로마시대 길 전경     © 기독타임스


여리고성 안내도에 나오는 성벽의 라인을 추적하여 보면 여리고성의 면적은 2만 5,000m²에 달함으로써 규모를 갖춘 도시의 모습으로 보인다.

 

우리 일행이 성지순례 시 도로 밖에서 답사하고 있는 엘리사의 샘도 실은 여리고 성안에 있는 우물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성경에서는 여리고 주민이 성문을 굳게 잠그고 출입하는 자가 없었다(수 6:1)고 기록하고 있다. 왜 여리고성 주민은 철옹성 같은 성벽을 가지고 두려워서 성문을 잠그고 출입하지 않았을까. 보통 학계에서는 면적당 인구 계수를 적용한다면 여리고 인구는 약 700명 정도라고 계산한다.

 

그러나 전쟁을 앞둔 성 주변의 인구가 모두 성안으로 들어와 있더라도 약 1천500명은 넘지 않았을 거로 추정하고 있다.

 

▲ 여리고전경     © 기독타임스

 

그런데 요단강 건너편인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치고 있을 때 여리고성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어마어마한 진을 보았을 것이며 특히 야간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텐트에서 불을 밝힌다면 그 규모는 엄청났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여 본다면 여리고 성안의 주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전술은 성문을 잠그고 버티는 것 외에는 상상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특히 여리고는 견고한 이중 성벽 방어 시스템에다 풍부한 수자원과 식량을 가지고 버티고 있다면 인원이 많은 이스라엘 쪽에서 먼저 지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와는 다르게 이스라엘 쪽에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던 지도자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그 지휘를 인계받은 후에 첫 전투인 점을 고려해 볼 때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쪽은 이스라엘 쪽.

 

▲ 파헤쳐진 여리고성 내부모습     © 기독타임스

 

만일 첫 전투가 장기화하고 군사들의 사기가 저하된다면 이스라엘의 위기가 닥칠 수도 있는 상황.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전투에 개입하였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여리고성의 무너진 사건을 고고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할 때 자유주의 신학 특히 증거를 중요시하는 쪽에서는 시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논쟁을 일삼고 있기 때문에 난처할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여호수아가 활동하던 시대에 해당하는 성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텔 여리고를 발굴할 때 무너진 성벽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의 역사에 의한 무너진 여리고 성벽을 찾아냈다고 모두가 흥분하였지만 이후 영국의 고고학자 캐넌은 토기 분석 결과 이 성벽을 주전 1천550년경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활동하던 시기를 주전 1천400년경으로 본다면 약 150년 정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러나 맛사다 발굴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고고학자인 이갈 야딘 교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다고 설명한다. "여리고 주민이 이미 과거에 건설되었던 성벽을 계속해서 사용했을 것이다"는 가설을 통해 여리고의 시대적 난제에 접근하였다.

 

또한, 최근에 여리고를 발굴에 참여한 이탈리아 발굴단의 유물을 분석한 브라이언트 우드 교수는 토기 분석 및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에 따른 결과 여리고 성벽이 주전 1천400년까지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결론을 종합해 본다면 상당한 시대적 불일치의 견해를 해결하는데 많은 이바지를 한 것.

 

그 외 특이한 점이 또 있다. 여리고 성벽이 안쪽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무너져 내렸다는 것. 발굴자들의 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여리고 성벽 상부에 있던 내벽이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이는 벽돌들의 잔해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성문이 닫힌 성벽을 무너뜨리려면 공성 장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럴 때 성벽은 성 안쪽으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여리고 성벽은 바깥쪽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설령 내벽이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외벽이 높이가 약 4m인 점을 고려한다면 성안으로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다리와 같은 장비가 없다면 성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내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외벽의 계단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무너졌다는 것에 하나님의 오묘한 역사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성안에서 발견된 220리터에 달하는 불에 탄 곡식 역시 일반적인 전투 상식과는 상당한 차이를 말하여 준다.

 

일반적인 성을 함락시키는 과정에서는 성안의 곡식이 떨어질 때까지 외부에서 성을 포위하여, 성안에서 곡식이 떨어져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상식.

 

그럼에도 불탄 곡식을 발견하였다는 것은 성안의 주민이 곡식을 가지고 도망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성이 무너졌다는 것과 성을 정복한 사람들이 성안의 물건을 약탈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성경 여호수아서에 따르면 여리고성은 단 7일 만에 무너져 함락되었고 그리고 성벽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성안의 물건들에 손을 대지 않았다(수 6:18)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정말 우리가 놀라운 정도로 성경의 기록과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가 일치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할렐루야 감탄사가 나온다.

 

이처럼 성경의 기록을 고고학적 발굴과 비교하여 증거 할 수 있는 무너져 내린 여리고성을 일반적인 성지 순례 팀은 답사하지 않는다. 물론 그 이유는 입장료 절약도 있지만 그보다는 고고학적 지식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가이드를 구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행이 히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가이드 목사를 만나서 우리 일행은 이스라엘 성지를 보다 더 고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접근할 수가 이었다는 점에서 감사를 드린다.

 

여리고에서 / 신춘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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